호수 56

그래서 좋아

화려하지도 않고 뛰어나지도 않아 머무르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지 은근슬쩍 왔다가 은근쓸쩍 떠나지 모르는 척 감당의 몫으로 남겨 두지 가늠 못할 깊이 때문에 발목을 잡혔어 마음을 뺏겼어 그래서 당신이 좋아 좋아한다고 잡을 수 있을까 사랑한다고 품을 수 있을까 내 뜻이 아닌 것임으로 그저 바라 다 볼 일 그저 지켜볼 일이지 2023. 12. 13. 거창 대야리.

호수 2023.12.19

사랑의 힘

상상력을 펼치면 항상 희망에 넘치지 당신을 만나는 일이 언제나 그래 아무리 멋졌던 일들도 멋질 거란 생각을 이길 수는 없어 더 다가갈 수 없는 안갯속 풍경처럼 다 피지 않은 꽃 봉오리처럼 다가가려는 것에 대한 떨림과 기대가 주는 설렘보다 행복한 게 있을까? 볼 수 없다면 갈증으로 시달릴 거야 만날 수 없다면 안쓰러움으로 말라갈 거야 느낄 수 없다면 아는 것 따윈 아무 소용없겠지 상상 속의 풍경이 현실이 된다면 결과 말고 시도가 훨씬 소중한 거지 펑펑 시들고 싶지 않아 사랑의 힘이 솟아나기 때문이지 2023. 04. 28. 대청호에서

호수 2023.05.02

아찔한 풍경

시간을 조각내면 영상 같은 영롱한 단면 햇살이 분해되면 화석처럼 박혀있던 풍경이 혼미하게 기어 나오지 깨어나는 것은 다 새로워 다 경이로워 햇살 공이 와 안개 실탄 "탕" 한 방 "탕" 또 한 방 숨 막 힐 새벽사냥 시간의 칸칸마다 고요의 표적 아! 아찔하혀라 쪼개도 보고 잘라도 보고 모양이 천차만별이지요 명명 불별 따져야 할까요 뭉실 두루 넘겨야 할까요 결이 강한 곳에서 머뭅니다 가장 약한 곳에서 멈춥니다 안쓰러운 풍경을 안고 갑니다 마음에 닿는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호수 2023.04.25

아득한 거리

그리움은 호수 건너에서 가물거리지 보이지만 아련한 것 들리지만 아득한 것 출렁이다가 잔잔하지 그리움은 야생동물 다가가면 도망가고 멀리하면 사라지지 급하지도, 느긋하지도 않은 분별력의 거리를 지킬 일이지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면 급하다고 다가가지 마 느긋하게 멀리하지도 마 기다림의 거리를 지켜야 해 안정의 거리를 잊지 마 분별력을 잃어서 사랑은 도망치는 거야 경남 합천 보조댐

호수 2023.04.18

오래된 순도

추억 때문에 그리울 때가 있지 옛날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지 삶이 칠판이라면 덮어쓸 수 없으니 핵심은 별표로 남겨두고 오래된 것은 지워야겠지 다 채울 수는 없으니까 희미한 것부터 지우는 거야 멀리서 덮어 두는 거야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아득하게 써 내려가는 거야 안개처럼 한 순간 아무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찰라든 잠시든 찾아가서 마주한 시간 그보다 소중한 것이 있을까 새벽안개 호수 노을 진 붉은 하늘 어둠 속 푸르른 달빛 꽃을 흔드는 벌과 나비의 날갯짓 열매 속에 스미는 바람 햇살 빗방울 태풍 뒤의 언덕, 하늘, 바다 사랑하는 사람의 해맑은 미소 그대로라도 좋은 당신의 깊고도 오래된 순도 아! 옛날은 길고 앞날은 짧네 섬기는 마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 설렘으로 마주 할 수 있게 다음 계절을 준비해야겠다..

호수 202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