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 18

멀리서

시작점의 지속되는 샘물 같은 어두운 곳에서 길을 안내하는 등불 같은 사랑이여 넘치지 않음을 조급해 않으리 찬란하지 못 함을 안쓰러워 않으리 시공의 거리는 그저 껍데기 가까운 것은 빠르게 스쳐가고 멀리 있는 것은 별처럼 숨차게 따라오지도 않지 자그마한 가슴으로 멀리멀리 지켜볼 수 있어 존재 없이도 기억될 수 있다면 어느 때든 어디서든 살아있는 알맹이 지치지 않을 영혼이여! 부초는 가라앉은 지 오래되고 낙엽 지고 허허로운 빈자리에 떠나지 않을 앙상을 채우려고 무던하게 피어오르는 새벽안개 11월의 우포늪입니다.

우포 2023.11.28

그만큼

안개가 가둬 놓은 호수의 숨소리가 고요해서 경견 하지 않으면 죄 짓는 것만 같네 들숨으로 새벽을 마시면 나도 번잡을 지울 수 있을까? 날 숨으로 아침을 내쉬면 욕심을 다 뱉어낼 수 있을까? 멀리 말고 가까운 것에 다하라 하네 많이 말고 주어진 것에 몰입하라 하네 희귀할수록 가치가 더하고 절실할수록 목마르지요 넉넉하지 않으면 세상이 선명해집니다 아쉬움의 잠을 깨워주는 건 부족함입니다 안개가 새벽을 가둬놓고 그만큼이라 합니다 2023. 05. 09. 우포

우포 2023.05.16

사라진 경계

종소리보다 청아한 물안개가 북소리처럼 커져 울려 퍼지면 숲과 늪 너와 나의 보일 듯 말 듯한 거리에서 경계가 허물어지지 더 이상 남이 아니야 지우는 일처럼 무한한 게 있을까 접는 일처럼 평온한 것이 있을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은 경계를 없애는 일 지워진 곳에서 가슴을 내주고 등을 보여주는 일이지 투명하기 때문에 깨지고 선명하게 때문에 멀어진다 간명하기 때문에 의아하고 분명하기 때문에 섞일 수 없다 2022. 11. 2. 창녕 우포늪 쪽지벌

우포 2022.11.15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사람이 풍경이야

모두들 분명하라 말하는데 누구든 투명하라 주장하는데 역으로 치네! 풍경은 지워져야 깊은 거라고 자연은 흐릿해야 아름답다고 모두들 확실한 답을 요구하는데 어딘들 목적을 추구하는데 역으로 치네! 풍경은 모호한 질문을 던지네 자연은 모른 듯 돌아서 보여주네 풍경은 시선을 의식하지 않지 그래서 아름다운 거야 기다림이 끌고 온, 설렘 힘들게 취한 것들은 모두 소중하지 시도해서 헛된 일은 없어 시도하지 않아 헛된 거야 붉은 노을을 한 번에 볼 수도 있겠지 안갯속 풍경을 두세 번만에 만날 수 있겠지 열 번을 허락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중 한 번은 허락해 줄 테니 얻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지 얻으려 하는 걸음이 다일 수도 있지 2022. 04. 06. 창녕 우포늪.

우포 2022.05.10

시작이 태초였을 테니 시간의 풍요요 아득함으로 가득 찼으니 공간의 풍요요 그 안에 나는 소소한 點점 이어도 좋겠소 제발 가늠할 수 없는 신비를 드러내지 마오 우주처럼 당신의 끝이 어딘지 숨 막힐 환상에 허우적거리며 빠져 들더라도 敬畏경외의 未地미지로 있어주오. 신비가 드러나면 경외가 깨지지요 끝이 어딜까? 무한으로 남겨놓고 차라리 모르는 게 좋겠습니다 새벽은 새는 바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깊이 우포에 서면 더해만가는 궁금증 안개가 가려줍니다. 창녕 우포, 쪽지벌.

우포 2021.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