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53

꼿꼿한 중심

봄이 오기 전에 떠나는 것도 있다 보내놓고 뼈대만 남은 채 기다리는 것도 있다 왁자지껄 꽃들을 얘기하고 바람을 따라다니며 새로운 것에 들떠있을 때 많던 적던 부끄럽지 않게 이뤘으므로 외로워 보여도 외롭지 않은 게 있다 임무를 다했으므로 남아서도 꼿꼿한 중심 허술해서 아름답다 행복이란 소유가 아니라 갈망이라고 사랑이란 뿌리처럼 어제를 올려 오늘도 시들지 않는 기쁨이라고 내일을 기다리며 의연하게 서있는 기둥이 있다 겨우내 김을 키우던 양식장 철 지난 바닷가엔 앙상한 지줏대만 남아 내년을 기다립니다 준비된 것을 마주하고 주어진 것을 받아 드리며 이룬 것만큼이면 됐지 서두를 일 없잖아 서운한 일도 없잖아 의연히 있을 거야 꿋꿋한 뼈대로 시들지 않는 기둥으로 2023. 03. 무안 도리포에서.

바다 2023.03.21

드넓은 고요

움직임의 연장선에는 출렁임과 고요함이 차이를 둘 뿐 공존하며 살고 있지 바라봄이 느낌으로 바뀔 때까지 지속하여 기다릴 테야 드넓은 고요 순간이라도 감동으로 마주하고 싶어 고요하거나 찬란하거나 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푸르면 푸르게 붉으면 붉게 가슴에 스며들어 반영되었으면 좋겠어 하늘을 우러르는 영원의 반사체 바다를 닮고 싶어 출렁임이야 잠재우면 고요가 되겠지 흔들림이야 지나가면 평온이 되겠지 모든 일 시간의 차이 일 뿐 똑같은 크기로 오고 가지 바라는 것, 원하는 것 그리 흔하게 오는 일 아니야 길게 바라 볼 일이야 만나지 않고서, 기다리지 않고서 내 앞에 와 준 고귀한 당신에게 "사랑합니다" 함부로 말할 수 없잖아 2023. 02. 23. 충남 서천.

바다 2023.02.28

좌절의 꽃

여행은 보석이 숨어있는 광산이야 어느 곳을 파더라도 다른 보석이 나오지 삶과 여행은 언제나 신비롭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을 빗나간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내공이란 근력을 키우며 뜻밖의 깨달음과 알지 못하던 새로움을 가져다주지 행복과 기쁨은 고난과 좌절의 꽃이야 광산의 숨은 보석 같아서 어디를 파고 들어가더라도 다른 보석을 만나지

바다 2022.12.13

가을엔

많은 것 얻지 못했더라도 당신 생각하면 두근대는 가슴 뜨거워지지 ‘그래도 세상 헛살지는 않았구나’ 추억의 단층 속에는 층층이 당신이 새겨져 있네 바람 불고 푸르른 날이면 나이테 같은 엷은 단층 하나 덧칠하고 싶어 무거운 것일랑 다 덜어내고 가을엔 새벽잠 깨어 붉은 해 가슴에 안고서 지난 일 되새기면서 세상 끝까지라도 걸어가고 싶어 자유롭게 새들처럼 가을엔 잡초도 꽃으로 보이네 카메라를 메면 풍경이 그림일쎄 꽃이라 생각하니 뽑을 풀 없고 보석이라 생각하니 버릴 돌 없네 전북 부안 변산반도

바다 2022.09.27

나그네새

나는 나그네 당차 지려고 정착 없이 유랑을 하네 날개를 펴면 사일 밤낮 몸무게가 반이 될 때까지 저 갯벌이 주유지야 3,000 m 하늘을 가르고 험난한 산맥도 넘어 1만 Km 망망대해를 건너지 남반구 피아코강에서 서해갯벌 시베리아 아무루강까지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하지 쉼 없는 단 한 번이야 아무리 멀지라도 한 번에 갈 수는 없겠지 중간쯤에서 브레이크도 밟아줘 재시동을 위해서 주유도 해야지 안도감이 돛이고 자각이 닻이야 잘 쉬어야 잘 갈 수 있는 거지 삽교천방조제 도요새

바다 202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