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나처럼은 말고

영원과 하루 2020. 7. 14. 04:02

어렸을 땐

5살형들과 맛짱 뜬 주먹이래

젊어서는 이빨로 차력을 과시도 했고

서울로 유학 간 큰 형님을 대신해서

기울어져가는 집안 농사도

몸이 부서지도록 다 지었다지

추종하는 아우들의 의리로

읍내에서는 누구도 힘으로 범접도 못했다는 그가

기타 치고 노래하는 형수와 눈이 맞아

도주하듯 고향을 떠나 처갓집 옥천 청산면에 들어왔던 거야

가족들과 드문 연락으로 지내며

고생 고생 힘든 삶

술로 위로하며 살았는데

결국 위암으로 칠십 중반의 나이에

"꽈당"

고목처럼 그의 생도 넘어 간 거야

 

코로나의 영향일 테지만

장례식장도 그의 살아온 자취처럼 조촐했지   

영정 앞에 잔을 들이다가

어깨를 들먹이며 쓰러져 흐느끼는

그의 아우 상욱형을 일으키려다

영정사진의 눈빛과 마주쳤는데

엿튼 미소의 그가 내려다보며

"아우야! 나처럼은 말고 건강하게 잘 사시게나"

왜, 엄숙한 분위기에

벼락처럼 후려친 듯  아찔함에

마지막 조언을 하는 것만 같아

그만,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지

 

뼈대도 통뼈

허우대도 상남

얼굴도 영화배우 뺨치던

겁 없던 그가

세월 앞에서

건강 앞에서

바람 앞에 촛불인 거였서

흐릿하게 아물거리는 가리어진 안갯속 풍경 같은 거였다니......

 

 

 

 

 

 

 

 

 

 

 

 

 

 

 

 

 

 

 

 

 

 

 

 

 

 

 

 

 

 

 

 

2020. 07. 08. 궁남지

 

'안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0) 2020.11.03
아니,  (0) 2020.08.25
설렘 속  (0) 2020.06.30
점심은 제가 살게요  (0) 2020.06.16
천국을 보려 하네  (0) 2020.06.09